커플링: 세계경제의 동조화 현상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우리의 일상생활을 살펴보자. 중동에서 수입한 천연 가스로 덥힌 따듯한 물로 사워를 하고, 미국산 면도날이나 면도기로 수염을 깎고, 미국제 젤을 바르며 머리를 손질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사의 상표가 붙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시리얼로 아침을 때운다.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나무로 생산된 종이를 사용하여 만든 신문을 읽는다. 중국제 옷과 구두로 입성을 갖추고 출근한 회사에서 한 나절 근무가 끝나면 호주산 쇠고기로 만든 국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브라질에서 수입한 커피가 나른한 몸을 다시 일깨운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는 외국의 상품 없이는 이어지기 어렵다. 이제 세계는 문자 그대로 지구촌이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을 채택한 대부분의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유럽의 수입 수요 증가에 크게 의존했다.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개도국의 수출에는 빨간 불이 켜진다.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다른 나라의 경제는 감기에 걸린다. 고소득 국가의 불황으로 인해서 저소득국가도 불황에 진입한다.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급락하면 한국의 주가도 떨어진다. 고소득 국가의 경제 변동에 저소득 국가의 경제도 함께 움직이는 현상이다. 동조화(커플링)이다.
커플링은 국제무역과 자본이동을 통한 세계경제의 통합에 따른 결과이다. 국가 사이의 무역이 급증한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운송비용의 감소이다. 최근에는 항공기 보안 강화와 원유가 상승에 따라 항공운송비용이 약간 증가하기는 했지만 종전에 비해 항공운송비용은 현저히 감소했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대량 운송에 따른 원가절감으로 해양 운송비용도 상당히 감소했다. 물류이동에 새로운 기술이 접합된 결과이다.
이와 함께 인터넷과 같은 통신수단의 발달로 어느 나라의 임금이 저렴한지 어느 나라가 세제 혜택을 주는지에 대한 정보 획득이 쉬워졌다. 이에 따라 생산비용이 낮은 해외에서의 생산 활동이 급격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낮은 생산비용으로 만들어진 상품은 낮은 운송비용에 힘입어 다시 본국으로 수입되거나 제3시장에서 판매된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공산품의 생산 확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으로 발전되었다.
관세와 비관세 장벽의 철폐도 국제무역을 증대시킨 요인이다.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의 수출확대정책과 소련연방의 해체 이후에 동유럽의 무역개방도 세계무역량을 증가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와 함께 노동력의 국제 이동도 활발해졌다. 고임금 국가에서는 부족한 노동력을 저임금 국가의 노동력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노동력의 국제이동은 개발도상국가의 소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7년의 경우 저개발국가로 유입된 노동자의 본국 송금은 2,400억 달러로 2001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저소득국가의 소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송금은 고소득 국가의 상품을 구입하는 중요한 재원으로 충당되었다.
국가 사이의 경제적 연계를 현저하게 강화시킨 요인은 금융시장의 개방에 따른 자본시장의 통합이다. 이제 자본시장은 한 나라의 금융시장 충격이 다른 나라의 경제로 연계되는 통로가 된다. 최근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세계의 구석까지도 그 충격의 여파가 번졌다. 각국의 금융시장은 유동성 위축과 함께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대되었다. 해외 자산에 투자했던 금융회사들은 원금회수에 진력하고, 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간 국가들은 실물부문이 건전함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시장의 충격은 무역 부문보다 그 규모가 크고 속도도 빠르게 전파된다.
디커플링: 세계경제의 탈동조화
그러나 최근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 발생한 수요 또는 공급 충격이 다른 나라의 경제상황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9월 미국 유수의 투자금융회사인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흥국가들이 불황에 빠져들고 이들 국가 가운데 일부는 금융체제가 붕괴될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적 예상과는 다르게 2009년 9월부터 동아시아 국가의 경기는 다시 반등하기 시작하며 이후 안정된 회복세를 지속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동아시아국가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성장과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한대로 아시아 신흥국가들(홍콩, 중국, 한국, 싱가포르, 대만)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010년 8.2%를 달성했다. 특히 중국은 정부예상을 상회하는 9.2%(2009년)와 10.3%(2010년)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미국 경제가 기침하면 일본경제는 감기에 걸리고, 한국 경제는 폐렴에 걸린다”는 커플링 현상의 이탈로 간주될 수 있다. 어떠한 요인이 디커플링이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첫 번째 요인은 국내수요의 증가에 따른 경제회복이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속한 경기회복은 1차적으로는 정부의 금융 및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경기부양책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부양책의 효과는 단기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회복되는 경기를 지속시킬 수 있는 성장의 엔진은 민간 부문의 수요 확대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빠른 경기회복은 미국과 유럽의 수입 수요 감소에 따른 수출부진을 대체할 내수의 증가가 뒷받침한 결과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GDP 대비 수출의 비율이 2005년 이후 감소하는 추세와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의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성장세는 유지한 점에서 잘 나타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지역경제통합 결성에 따른 지역 내 무역의 증가이다. 동아시아 지역 내의 무역구조는 일본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에서 생산된 공산품 원자재, 부품 및 중간재가 중국에 유입되어 최종재로 조립된 이후에 세계시장에 수출되는 형태이다. 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자재가 조립 벨트에 의해 중국으로 이동하여 완제품으로 조립되는 것이다. 중국이 지역 내 다른 나라의 수출품을 흡수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고소득국가의 경기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인 수요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거대한 중국시장으로 인하여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는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탈동조화 된 것이다.
세 번째 요인은 금융 위기이다. 2008년의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거대한 충격파는 동아시아 금융시장의 핵심을 흔들었다. 2008년 9월 리먼의 파산 이후로부터 2009년 1분기 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주가는 폭락했고 각국의 통화는 대폭 평가절하 되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초기의 치명적 독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은 단기간에 위기에서 벗어났다. 2009년에 들어오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시장은 안정성을 되찾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체제가 금융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악성 자산을 대량으로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1997-98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들 국가들은 금융체제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향상되도록 금융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재발한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탈동조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동조화가 다시 발생(리커플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소득국가에서 발생하는 수요와 공급의 충격이 국제무역과 자본이동의 통로를 통하여 나머지 국가들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저소득 국가에서 발생한 사소한 충격은 고소득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비대칭적인 연계에 따른 동조화이었다. 그러나 최근 신흥국가에서 발생한 생산위축이 고소득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상호의존 상태에서의 동조화 추세도 가능할 수도 있다. 실을 가로 세로로 촘촘하게 짠 천과 같은.
참고문헌: Donald L. Kohn, "Global economic integration and decoupling," US Federal System, 2008; Yung Chul Park, "The Global Financial Crisis: Decoupling of East Asis-Myth or Reality," ADBI Working Paper 298, 2011.
[네이버 지식백과] 디커플링 -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 (경제학 주요개념,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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