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제주도에 왔으니 유채꽃을 보고 가라고 해서 바다 쪽으로 향하던 차를 잠시 돌려 큰 항공사가 대대적으로 조성했다는 중산간의 유채꽃길로 달려가 보았는데, 너무 장관이라서 되돌아 내려왔다. 무려 9㎞. 흐드러진 꽃과 수많은 인파들, 물끄러미 보다가 내려왔다. 너무 큰 것, 너무 많은 것, 너무 압도적인 것은 감당하기가 어렵다.
강의 차 내려왔다가 오전의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그래도 제주도에 왔으니 한숨은 돌리고 올라가자는 생각으로 서귀포의 남쪽 강정마을 쪽으로 선회해 보았다. 이미 완공 단계로 접어든 해군기지와 크루즈 터미널 공사 현장으로 나 있는 작은 길들마다 몇 해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힘겨운 나날의 상흔들이 남아 있었다. 강력하게 조성된 기지와 터미널의 위용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평화를 바라는 현수막과 그 평화의 실현을 애원하는 깃발들이 한 줌이라도 남아 있어서 누군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전언을 들려주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동백꽃
독특하고 변화 많은 김추자의 원곡
차를 세우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골목을 걸어보았다. 그러다가 보았다. 꽃을 보았다. 낡은 담장에 기대어 서 있는 꽃나무 한 그루. 그 가지들마다 피어 있는 꽃잎들과 서둘러 몸을 던져 길바닥에 누워 버린 꽃잎들. 꽃나무와 꽃잎을 보았다. 동백나무와 동백꽃을 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른 지역의 군락지에서 본 적도 있고, 산사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는데, 이렇게 강렬하게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
동백꽃 하면 선운사가 우선 떠오르고, 동시에 서정주와 최영미의 시가 흔히 거론된다. 걸작을 많이 써내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감각의 인상적 시를 쓴 최영미는 속절없이 고개를 떨군 동백꽃을 이렇게 썼다. “꽃이 /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 아주 잠깐이더군”(‘선운사에서’). 동백의 꽃말이 애틋한 사랑의 기다림이다. 겨울에 피는 꽃, 아열대기후에 피는 꽃, 그래서 한반도의 경우 제주도와 경남·전남·부산 등의 해안에서 볼 수 있는 꽃, 이미자와 조용필의 노랫말에 나오는 꽃, 전남의 도화(道花)이고 여수의 상징인 꽃, 그런데 전북에서 피고 지니 군산 주변이 그렇다. 군산의 상징 꽃이 동백인데, 그러니 인근의 선운사에 왜 이 꽃이 피지 않겠는가. 다만, 개화의 때를 기다려 달려가면 금세 고개를 떨구며 추락해 버리는 꽃이 되니, 삶과 사랑의 속절없음을 최영미는 “꽃이 /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고 썼다.
너무 일찍 가도 꽃을 보기 어렵다. 겨울에, 이때쯤이겠거니, 하고 달려가면 아직 꽃은 나무 속에 깃들어 있는 수가 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를 보면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라고 되어 있다. 막걸릿집 여자의 쉰 목소리에 지난봄의 동백꽃이 묻어 있다.
내 앞의 꽃나무와 그 잎들을 본다. 여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잎과 땅으로 추락한 잎들을 본다. 동시에, 노래 하나가 생각났다. 실은 며칠 동안 자주 들었던 노래인데, 이 나무 앞에서 그 노래는 마치 이 순간을 위하여 며칠 내내 맴돌았다는 듯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김추자의 노래 ‘님은 먼 곳에’다. 이를 원본으로 하여 그밖의 여러 해석들을 비교하여 며칠 들어야 했고, 그래서 많은 가수들의 많은 버전들을 들었다.
원곡이 워낙 세고, 독특하고, 변화가 많아서 다른 가수들이 이를 해석하는 데 쉽지 않았다. 이른바 ‘가창력’이라고 해서,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이 곡의 누적된 아우라를 재해석하기가 어렵다. 이 노래는 기교를 부리면 부릴수록 기교가 승하여 애틋한 정념이 묻혀 버린다. 꽤 많은 가수들이 애써서 기교를 부려 그것을 비틀어 내보이려다가 극상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어느 근사한 호텔 바에서 들려오는 듯 지나치게 꾸밈이 많아서 슬프기보다는 요사스럽게 들리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너무 애절하게 목놓아 부르다 보니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라는 가사가 너무 청승맞게 들려오는 노래도 있었다.
애절하게 부르다 보면 청승맞게 들려
어떤 점에서, 이 노래는 애이불비((哀而不悲), 즉 속이 타들어갈 정도로 슬프지만 겉으로는 그것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감성으로 부를 때 더욱 그 슬픔이 지극해지고 깊어진다.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첫 순간에 귀를 번쩍 뜨이게 한 노래는 박정현과 거미의 노래였다.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목소리로 두 가수는 노래의 첫 소절부터 사랑한다는 말 그 한마디를 못하고 아득하게 멀어져간 별리의 애틋함을 들려준다. 그녀들의 곡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애틋해져서, 내가 만약 그녀들의 연인, 곧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이었다면 이 곡을 듣고 발길을 돌릴 것만 같다.
반면, 아예 목소리 안에 기교가 묻어 있고 심지어 몸 속에도 배어 있는 박정현과 거미는 단지 스스로의 몸이 이끄는 대로 부를 따름인데 탁월한 기교를 취하고 더불어 그것마저 뛰어넘어 버림으로써 이 곡이 지닌 애틋하고 간절하고 속절없는, 흡사 동백의 붉은 꽃잎 같은 절대적인 아득함을 들려준다. 박정현의 영어 버전도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고, 특히 거미가 2014년 10월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부르는 영상을 보면, 아 진짜 노래를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거미는 별다른 장식도 없는 평범한 옷차림에 한 손으로는 마이크 들고 다른 손은 코트에 넣은 채 노래를 부르는데, 점점 더 슬픔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목소리는 가파르게 꺾이면서, 실제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별리의 슬픈 감정이 떠오른 듯한 가창을 들려준다. 이 노래를 들은 청취자들이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노래를 듣느라 큰일났다는 소감이 이어진다. 나 역시 그러하였다.
군락지의 꽃보다 이렇게 마을의 일상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동백꽃이 더욱 아름다운 까닭 또한 그러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일상이란 그리 평온하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고 평화롭지도 않다. 세상의 공포가 일상을 흔들고 세상의 불안이 일상을 교란시킨다. 그래서 꽃도 그러하며 노래 또한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아름답고 진실로 슬프다.
더욱이 4월 아닌가.
흩날리는 벚꽃에 의하여 언제든 4월만 되면 누구라도 상념에 젖게 마련인데, 2년 전의 참사로 인하여 4월은 진실로 ‘잔인한 달’이 되었으니, 이럴 때 피는 꽃, 이럴 때 듣는 노래는 애틋하여 차마 다 보기 어렵고 슬퍼서 다 듣기 어렵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아이들 이름 한 번 다시 불러보고 싶다고, 그 얼굴을 한 번만 만져보고 싶다고, 그렇게 애틋하게 소원을 하여도, 영영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이 슬픔의 계절에, 갑자기 마주친 붉은 꽃잎은 지독히도 허망하였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604111720381#csidxd458e8b29a37a3cbfd9a667b5d6da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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